평단의 찬사를 받은 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2022)를 만든 김세인 감독은 김태용, 민규동 감독의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1999)를 꼽았다. 등굣길에 우연히 빨간 노트 한 권을 주운 소녀는 글씨와 그림으로 빼곡히 채워진 두 여고생의 교환일기를 넘겨보며 상상을 통해 비밀스러운 관계 안으로 빠져든다. 여전히 영화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세기말 명작이다.
장편 데뷔작 <찬실이는 복도 많지>(2020)로 재기 발랄한 연출력을 선보인 김초희 감독은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를 소환했다.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순수했던 남성 4인조 밴드 ‘와이키키 브라더스’. 어느새 친구들은 매서운 현실에 찌든 생활인이 되어 있고, 어린 시절의 꿈과 사랑을 되새기며 서글픔을 느낀다. 쓸쓸하고 고단한 삶을 위로하는 수작을 감상할 절호의 기회다.
<우리들>(2016), <우리집>(2019)으로 한국 독립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윤가은 감독이 택한 이정향 감독의 <미술관 옆 동물원>(1998)도 만나볼 수 있다. 성격도, 취향도 모든 것이 다른 두 남녀가 우연히 같은 집을 쓰게 되면서 사사건건 부딪히는 두 사람의 말다툼은 결국 사랑을 부른다. 함께 시나리오를 써 가며 풀어가는 1998년의 아기자기한 사랑의 대화가 2025년 부산을 찾은 관객을 매혹할 예정이다.
<남매의 여름밤>(2020)으로 유수의 영화제에서 찬사를 받은 윤단비 감독이 지목한 박찬옥 감독의 <질투는 나의 힘>(2003)도 선보인다. 이별 통보를 받은 주인공이 애인이 사랑하는 남성이 편집장으로 있는 잡지사에 취직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로, 질투라는 감정을 세밀하게 묘사한 명작이다.
맹랑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지옥만세>(2023)를 연출한 임오정 감독은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2001)를 선택했다. 스무 살이 되면서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 다섯 명의 단짝 친구들이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번갈아 맡게 된다. 고양이의 온기와 함께 친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향해 걸음을 딛는다. 방황하는 어린 날을 비추는 ‘영원한 젊음의 영화’가 다시 한번 관객과 만난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오는 9월 17일(수)부터 26일(금)까지 영화의전당 일대에서 열흘간 개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