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02
김성수 감독이 극찬한
다큐멘터리 영화 <정돌이> 2월 개봉
“뽀얀 최루탄 연기 속, 세상이 폭력과 혼돈으로 마구 흔들릴 때..
한켠에 이런 따스한 <정돌이> 이야기가 있었구나!”
– ‘서울의 봄’ 김성수 감독

반민주의 시대, 새로운 희망인 2030과 함께 두 세대가 봐야 할 영화 <정돌이>

2024년 5월 30일, 이제는 사라진 대한극장에서 <정돌이> 시사회가 열렸다. 김성수 감독, 이현승 감독, 전찬일 평론가, 오동진 평론가 등 영화인들과 주인공인 정돌이 송귀철을 비롯해서 어린 시절의 정돌이를 기억하는 고대 선후배들이 대거 참석해 300여석을 꽉 채웠다.

시사회에 참석했던 출연진 이준영(고대 84학번)씨는 시사회에 참석한 옆자리 관객으로부터 의외의 인사를 들었다고 전했다.


“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살 수 있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허리를 숙이며 인사한 관객은 1994년생, 이제 막 30이 된 여성이었다.

너무나 급작스러우면서도 정중하고도 진심 어린 인사에 이준영씨는 손사레를 치며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너무 부끄럽습니다. 요즘 이런 대한민국을 만든 세대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라고 답하자

“선배님 세대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었다는 것과 저희들이 누리고 살아온 자유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란 것을 영화를 보고 깨달았습니다.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라고 재차 감사의 말을 전했다고 한다.

“그건 제가 감사 받을 일이 아니라,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돌아가신 분들, 다치신 분들,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시는 분들 그리고 우리 영화에 나온 분들과 그 시절을 함께했던 분들 모두가 들어야 할 고마운 말씀입니다. 제가 혼자 듣자니 너무 부끄럽습니다.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은 그 때, 그분들을 기억해주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대한극장 <정돌이> 시사회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정돌이> 시사후에 즉석에서 각별한 감상평을 전했다.


영화가 제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좋아가지고 사실은 깜짝 놀랐어요. 왜냐하면 우리 연배들이 과거의 삶을 회고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감상적으로 갈 수밖에 없고 또 어떻게 보면 자기 변명조로 흐르기 십상이었는데 이 영화는 그런 예상을 보란 듯이 깨부수면서 아, 이런 류의 영화도 가능했구나! 굉장히 사적인 어떤 기획일 수 있었는데, 굉장히 보편성을 띨 수 있는, 그래서 확산적으로 나아갔다는 데에서 굉장히 좋았고요.

저는 그때 학생운동을 하지 못하고 영화에 빠져 살았던 사람이에요. 그래서 이걸 보면서 한없이 부끄러워서 가끔 눈물도 났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좋았던 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여전히 가능성,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것에 무한감동을 느꼈어요. 그래서 제 삶이 더 부끄러워지면서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가까지 나아가게 했다는 것!

사실은 정돌이라는 사연이 정말 드라마틱하잖아요. 그러나 애초부터 저는 정돌이는 하나의 구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굉장히 중요한 어떤 인연이고 사연이지만 이거를 통해서 우리는 어떻게 보면 과거와 현재를 돌이켜보면서 미래까지 제시해야 되는데, 그런 기대를 은근히 했었는데 그 기대를 충족시켜준 영화였어요.

김성수 감독, 전찬일 평론가, 김대현 감독

김형민( 전 SBS pd, 필명 산하)의 정돌이와 사람들


다큐멘터리 시사를 다녀왔다. 제목은 <정돌이>다. 나보다 학번이 빠른(?), 즉 1987년에 열 네 살 나이로 학교에 출현해 학교에서 먹고 자며 같이 데모도 하고 풍물도 치고 노래도 하며 대학생 형 누나들과 어울렸던 송귀철이라는 이를 중심으로 80년대 학교의 일각을 그려낸 작품이다. 귀철이는 우리 동아리 동기들과도 친하게 지냈는데 정경대 학생들과 특히 친해 ‘정돌이’라고 불렸다.


애초에 그가 학교에 오게 된 것은 가출 후 청량리 만화방에서 난장꿀림하던 중 수배가 떨어져 오갈데 없이 만화방을 찾았던 대학생 형의 손에 이끌려서였다. 작품 속에 등장하지만 워낙 가정 형편이 참혹했던 그는 학생회관을 집 삼아 생활했고 거기서 풍물을 배워 지금은 일가를 이룬 풍물꾼으로 성장해 있다. 당시 학교신문에 사범대 학생들이 “우리가 전문가니 우리가 맡아 기르겠다.”고 양육권(?)을 주장했다는 이야기가 등장하고, 거래하는 경찰서에서 ‘정돌이’만 잡아가면 당시 학생운동권 핵심들이 탈탈 털린다는 말이 나왔다고 하니 꽤 널리 알려진 ‘87학번’이었다.

다큐멘터리 속에는 송귀철과 알고 지냈거나 스치고 지나갔을 80년대 사람들이 여럿 등장한다. 그가 지옥 같은 집에서 술 취한 아버지에게 고통받았을 그 시간, 광주의 피바람과 전두환의 독수를 차마 모른체 할 수 없었던 이들은 목숨을 걸고 전두환과 맞서고 데모하다가 곤죽이 되도록 두들겨 맞고, 군대 끌려가서 프락치 강요당하며 사느냐 죽느냐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돌이가 대학에 왔던 그 해, 대한민국은 6월항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파란의 무대가 된다.

.정돌이는 열 네 살 소년으로 명동에 나갔고, 이한열 장례식을 목격했고 풍물을 거들었다. 김대중과 김영삼이 서로를 외면하는 그 역사적 순간을 보았고, 백기완을 지지하는 형들과 김대중을 비판적 지지하는 누나들이 충돌하는 모습도 직접 보았다. 문득 34년 전 처음 만났을 때, “내가 형들보다 선배야.” 으스대던 모습이 떠올라 왔다. 다큐멘터리를 다 보고야 때늦은 답이 흐른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다큐멘터리에서 정돌이와 같은 공기를 마셨을 8자학번들은 과거 뿐 아니라 오늘에 대해서도 격정적으로 토로한다. “우리는 다 꼰대가 돼 버렸다.” “그렇게 죽음으로 연 판을 자기들 꽃길로 삼는 이들 보면 가증스럽다.”(정확한 워딩은 아니나 대충.....) “신이 우리에게 무엇에 쓰려고 이런 희한한 경험을 하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후회는 없다.” 그리고 그들 중 여럿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이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뭇 걱정됐던 것은 이른바 ‘80년대 뽕’, 또는 ‘고대뽕’이었다. 그들의 용감했던 지난 날, 전두환에 맞서 장렬하게 투쟁했던 과거의 환상만 거창하게 불어젖히는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자뻑이 나오면 어쩌나 싶은 기우였다. 연출을 맡은 이가 믿고 보는 김대현 감독이었음에도 그랬다. 나 스스로 80년대의 ‘꼰대성’에 지쳐 가고 있으므로. 하지만 보면서 그 우려는 말끔히 씻겼다. 정돌이라는 필터의 힘이었을까. 필요 이상 절대 흥분하지 않고 감정에 적셔지지도 않은 담담한 카메라의 눈 탓일까.

.보는 내내 그 생각을 했다. 80년대를 관통하는 미덕이 있다면 그것이 위선의 결과이든 설익은 이념에 포획된 것이든, “나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바랐던” 이타성의 발현이 아닐까.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한 여성 노동운동가는 자신의 위장취업이 들통났던 순간을 나직하게 끄집어낸다.


하루는 동료들이 술렁이고 있어 이유를 물으니 회사가 게시판에 자신의 고등학교 대학교 성적표를 확대 복사해서 붙여 놨다고 했다. “이렇게 공부 잘하는 인간이 왜 우리 공장에 왔겠나. 이거 빨갱이다.”를 광고하고 싶었던 것. 그걸 갖다 붙인 상무 역시 동문이었다고 한다.

.그 상무는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기득권을 다 버리고, 기껏 노력해 얻은 대학생 휘장 다 팽개쳐 버리고 공순이로 밤을 지새고 ‘땜순이’로서의 자기 재능(?)을 재발견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를. 그리고 나로서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 시대에는 왜, 자신이 쌓아 올린 근거 자체를 무너뜨리고 더 많은 이들의 언제 올지 모르는 행복을 위해 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던가.


다큐멘터리에도 나오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이 386이건 586이건 어떻게 보는지는 익히 안다. 개꼰대에 위선자들. 운동했답시고 뻗대지만 자기 누릴 건 다 챙기는 이들, 데모한 경험과 추억을 무슨 훈장처럼 꺼내 보이는 웃기는 사람들.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세대에서 자신을 내던진 사람들은 소수였고, 그걸 밑천삼아 한세상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중에서도 소수다. 그들의 오늘로 인해 과거 대한민국의 역사를 빛냈던 수많은 이들의 ‘이타성’을 가치 없는 것으로 돌린다면 그것 역시 중대한 역사적 손실이 되지 않을까.


출연자 한 사람은 <그날이 오면>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날이 오면>의 마지막 구절은 부를 때마다 마음을 긁어 내리는 뭔가가 있다.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은 아니었으리.” 그리고 “아아 피맺힌 그 오랜 기다림도 헛된 꿈은 아니었으리.”

대개 젊음은 늙어 추해지고 아름다움은 오래 이어지지 않는다. 어느 세대든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래도 그 짧았던 젊음을 내던져 싸운 사람들, 그리고 그 뒤로도 피맺힌 기다림을 감수한 사람들에 대한 경의는 포기하고 싶지 않다. 오늘 욕받이가 된 586을 옹호하고 싶은 게 아니라, 오늘에 되살려야 할 그들의 가치는 무엇인가를 찾고 싶은 것이랄까.

POSTER
2nd POSTER
TRAILER
전찬일 평론가 인터뷰
STILL

INFORMATION
제목 : 정돌이
영어 제목 : Poliboy
장르 : 다큐멘터리
상영시간 : 93분
감독 : 김대현
<다방의 푸른꿈><시간의 종말> <코리안 블랙 아이즈> <흙의 숨, 진도이야기> 외
제작 : 인디라인, 고려민주기념사업회
출연 : 송귀철(정돌이), 서정만 외 
배급 : 정돌이 배급위원회, 인디라인
개봉 : 2025년 2월
로그라인 : 1987년 봄 열네살 가출 소년이 대학가의 격랑에 휩쓸린다.
SYNOPSIS
1987년 봄, 고려대에 홀연히 나타난 14살 소년 송귀철.

경기도 연천에서 아버지의 주취 폭력을 피해 가출한 소년은 청량리 역전을 배회하다가, 수배중인 고대 운동권 학생을 우연히 만나 심야만화방에서 하룻밤을 같이 보낸다.
다음날 아침, 수배학생은 가출 소년을 돌볼 수가 없어 소년을 데리고 고대에 오게 된다. 소년은 정경대 학생회실에서 기거하며 정돌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운동권 형과 누나들에게서 따뜻한 가족 같은 느낌을 받고 고대에 눌러 앉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형, 누나들에게 들었던 얘기는 ‘정돌이 밥 먹었니?’였고 밥에 있어서는 거절을 몰랐던 정돌이는 어떤 날은 여섯 끼를 먹기도 했다.

정돌이가 고대에 흘러 들어온 1987년 4월은 전두환의 ‘4.13 호헌’ 조치로 인해 대학이 격랑에 휘말리기 시작한 시기였다. 6월이 되자 정돌이는 형, 누나들을 따라 6월 항쟁에 참여했다. 단순 참여가 아니라 1987년 12월 대선 개표부정과 관련한 구로구청 투쟁에 참여할 정도로 운동권의 일원이 되었다.
정돌이는 운동권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들과 어울리다가 장구에 소질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후 정돌이는 고대 농악대의 일원이 되어 공연에 함께 참여하고 북을 들고 시위대의 앞에 서기도 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장구를 연마했고, 훗날 정돌이는 장구 명인이 된다.
한때 성북서 형사들은 ‘정돌이만 잡으면 고대 운동권 조직 전체를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정돌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1987년 봄으로 돌아간다.
기사 자료
보도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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