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민( 전 SBS pd, 필명 산하)의 정돌이와 사람들
다큐멘터리 시사를 다녀왔다. 제목은 <정돌이>다. 나보다 학번이 빠른(?), 즉 1987년에 열 네 살 나이로 학교에 출현해 학교에서 먹고 자며 같이 데모도 하고 풍물도 치고 노래도 하며 대학생 형 누나들과 어울렸던 송귀철이라는 이를 중심으로 80년대 학교의 일각을 그려낸 작품이다. 귀철이는 우리 동아리 동기들과도 친하게 지냈는데 정경대 학생들과 특히 친해 ‘정돌이’라고 불렸다.
애초에 그가 학교에 오게 된 것은 가출 후 청량리 만화방에서 난장꿀림하던 중 수배가 떨어져 오갈데 없이 만화방을 찾았던 대학생 형의 손에 이끌려서였다. 작품 속에 등장하지만 워낙 가정 형편이 참혹했던 그는 학생회관을 집 삼아 생활했고 거기서 풍물을 배워 지금은 일가를 이룬 풍물꾼으로 성장해 있다. 당시 학교신문에 사범대 학생들이 “우리가 전문가니 우리가 맡아 기르겠다.”고 양육권(?)을 주장했다는 이야기가 등장하고, 거래하는 경찰서에서 ‘정돌이’만 잡아가면 당시 학생운동권 핵심들이 탈탈 털린다는 말이 나왔다고 하니 꽤 널리 알려진 ‘87학번’이었다. 다큐멘터리 속에는 송귀철과 알고 지냈거나 스치고 지나갔을 80년대 사람들이 여럿 등장한다. 그가 지옥 같은 집에서 술 취한 아버지에게 고통받았을 그 시간, 광주의 피바람과 전두환의 독수를 차마 모른체 할 수 없었던 이들은 목숨을 걸고 전두환과 맞서고 데모하다가 곤죽이 되도록 두들겨 맞고, 군대 끌려가서 프락치 강요당하며 사느냐 죽느냐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돌이가 대학에 왔던 그 해, 대한민국은 6월항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파란의 무대가 된다. .정돌이는 열 네 살 소년으로 명동에 나갔고, 이한열 장례식을 목격했고 풍물을 거들었다. 김대중과 김영삼이 서로를 외면하는 그 역사적 순간을 보았고, 백기완을 지지하는 형들과 김대중을 비판적 지지하는 누나들이 충돌하는 모습도 직접 보았다. 문득 34년 전 처음 만났을 때, “내가 형들보다 선배야.” 으스대던 모습이 떠올라 왔다. 다큐멘터리를 다 보고야 때늦은 답이 흐른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다큐멘터리에서 정돌이와 같은 공기를 마셨을 8자학번들은 과거 뿐 아니라 오늘에 대해서도 격정적으로 토로한다. “우리는 다 꼰대가 돼 버렸다.” “그렇게 죽음으로 연 판을 자기들 꽃길로 삼는 이들 보면 가증스럽다.”(정확한 워딩은 아니나 대충.....) “신이 우리에게 무엇에 쓰려고 이런 희한한 경험을 하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후회는 없다.” 그리고 그들 중 여럿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이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뭇 걱정됐던 것은 이른바 ‘80년대 뽕’, 또는 ‘고대뽕’이었다. 그들의 용감했던 지난 날, 전두환에 맞서 장렬하게 투쟁했던 과거의 환상만 거창하게 불어젖히는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자뻑이 나오면 어쩌나 싶은 기우였다. 연출을 맡은 이가 믿고 보는 김대현 감독이었음에도 그랬다. 나 스스로 80년대의 ‘꼰대성’에 지쳐 가고 있으므로. 하지만 보면서 그 우려는 말끔히 씻겼다. 정돌이라는 필터의 힘이었을까. 필요 이상 절대 흥분하지 않고 감정에 적셔지지도 않은 담담한 카메라의 눈 탓일까. .보는 내내 그 생각을 했다. 80년대를 관통하는 미덕이 있다면 그것이 위선의 결과이든 설익은 이념에 포획된 것이든, “나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바랐던” 이타성의 발현이 아닐까.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한 여성 노동운동가는 자신의 위장취업이 들통났던 순간을 나직하게 끄집어낸다.
하루는 동료들이 술렁이고 있어 이유를 물으니 회사가 게시판에 자신의 고등학교 대학교 성적표를 확대 복사해서 붙여 놨다고 했다. “이렇게 공부 잘하는 인간이 왜 우리 공장에 왔겠나. 이거 빨갱이다.”를 광고하고 싶었던 것. 그걸 갖다 붙인 상무 역시 동문이었다고 한다. .그 상무는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기득권을 다 버리고, 기껏 노력해 얻은 대학생 휘장 다 팽개쳐 버리고 공순이로 밤을 지새고 ‘땜순이’로서의 자기 재능(?)을 재발견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를. 그리고 나로서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 시대에는 왜, 자신이 쌓아 올린 근거 자체를 무너뜨리고 더 많은 이들의 언제 올지 모르는 행복을 위해 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던가.
다큐멘터리에도 나오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이 386이건 586이건 어떻게 보는지는 익히 안다. 개꼰대에 위선자들. 운동했답시고 뻗대지만 자기 누릴 건 다 챙기는 이들, 데모한 경험과 추억을 무슨 훈장처럼 꺼내 보이는 웃기는 사람들.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세대에서 자신을 내던진 사람들은 소수였고, 그걸 밑천삼아 한세상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중에서도 소수다. 그들의 오늘로 인해 과거 대한민국의 역사를 빛냈던 수많은 이들의 ‘이타성’을 가치 없는 것으로 돌린다면 그것 역시 중대한 역사적 손실이 되지 않을까.
출연자 한 사람은 <그날이 오면>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날이 오면>의 마지막 구절은 부를 때마다 마음을 긁어 내리는 뭔가가 있다.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은 아니었으리.” 그리고 “아아 피맺힌 그 오랜 기다림도 헛된 꿈은 아니었으리.” 대개 젊음은 늙어 추해지고 아름다움은 오래 이어지지 않는다. 어느 세대든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래도 그 짧았던 젊음을 내던져 싸운 사람들, 그리고 그 뒤로도 피맺힌 기다림을 감수한 사람들에 대한 경의는 포기하고 싶지 않다. 오늘 욕받이가 된 586을 옹호하고 싶은 게 아니라, 오늘에 되살려야 할 그들의 가치는 무엇인가를 찾고 싶은 것이랄까. |